있으나 마나 한 ‘권고’…복직 좌절당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안현상 0 2020.10.1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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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해고자 김진숙씨, 민주화보상위 복직 권고에도
사측 거부로 일터 못 돌아가
전과 기록 말소는 법무부 반대에 걸려
민주화보상위 복직 권고에도 사측 거부로 일터 못 돌아가
[경향신문]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이 일터와 명예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 전과 기록은 지워지지 않았다. 관련 법률상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복직이나 전과 기록 말소는 권고 사항일 뿐이어서 정부 부처나 기업들이 이를 대부분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복직 권고, 전과 기록 말소 등을 요청·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주화보상위원회)의 심의·결정을 거쳐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을 뜻한다.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부상한 사람,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해직되거나 학사징계를 받은 사람 등이 속한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로 잘 알려진 김진숙씨(사진)도 이런 경우이다. 그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민주화보상위원회가 그의 복직을 권고했지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용접사로 일했지만 1986년 7월 해고됐다. 노조 대의원으로서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서 노동 현장에 계속 머물렀으나 해고 상태엔 변함이 없었다. 2009년 민주화보상위원회가 사측에 복직을 권고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화보상위원회가 2009년 한진중공업에 김씨의 복직 권고를, 11년 만인 지난 9월25일 재권고를 했지만 사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12일 입수한 김씨의 친필 ‘복직희망서’에는 복직을 향한 그의 열망이 담겨 있다. 지난 9월18일 작성된 글에서 김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고 복직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13년째 저는 공장 앞을 떠도는 해고자”라며 “두 달 후면 정년을 맞는다. 해고자로 죽을 순 없다”고 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달 18일 민주화보상위원회에 제출한 자필 복직희망서. 이은주 의원실 제공

김씨처럼 많은 이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직장을 잃었지만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2004~2020년간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자의 복직 권고 실적’ 자료를 보면 민주화보상위원회는 총 495건의 복직 권고를 했지만 수용된 경우는 32건(6.5%)에 불과했다. 민간기업의 수용 건수는 309건의 권고 중 2건(0.7%)이었다. 언론사는 92건의 권고 중 한 건도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공공기관은 40건의 권고 중 6건(15%)을 받아들였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전과 기록 말소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의원이 행안부에서 제출받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전과 기록 말소를 위한 법무부와의 수발신 공문’을 보면, 민주화보상위원회는 2004년 경찰청과 법무부에 민주화운동으로 전과 기록이 남은 3825명에 대해 기록 삭제 요청 공문을 발송했지만 2005년 법무부는 거부 의견을 밝혔다. “전과 기록인 수형인 명표나 수형인 명부의 폐기 및 삭제 사유에 민주화보상위원회의 요청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주화보상위원회는 2008년 전과 기록 삭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거부했다. 현행법은 수형인이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지 않고 형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그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전과의 효력을 없앤다고 제한적으로 규정한다.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전과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전과 기록 때문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정부 포상에서 제외되거나 서훈 취소 대상이 된다. 현행 상훈법 및 정부포상업무지침에 따르면 사형이나 무기, 1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사람은 서훈이 취소되거나 정부 포상 추천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 포상 추천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민주화보상법 취지와 맞지 않다며 행안부 장관에게 정부포상업무지침 개정을 권고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권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자 복직과 전과 기록 삭제를 위한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email protected]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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